금융위기에 불법사금융은 그 자리를 기다린다

Visual representation of a scam concept using toys, dice, and fake money on a white background.

불법사금융을 다루는 기사들은 대개 두 종류의 인물을 등장시킨다. 악질 업자와 속아 넘어간 피해자. 그러나 이 구도는 핵심을 비껴간다. 수십 년간 단속과 입법이 거듭됐음에도 이 시장이 형태만 바꿔가며 살아남은 데는, 개인의 탐욕이나 나쁜 업자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불법사금융의 공급을 아무리 차단해도 수요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하나의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금융 제도가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그 밖으로 밀어내는지, 그 구조가 문제의 출발점이다.

카드대란은 ‘개인의 방만’이 아닌 시스템의 실험이었다

1990년대 말 정부는 내수 회복의 수단으로 신용카드 소비를 적극 장려했다. 카드 사용액 소득공제, 영수증 복권제 같은 파격적 인센티브가 설계됐고, 카드사는 거리에서 신분증 하나만으로 카드를 발급했다. 상환 능력 심사는 사실상 형식에 불과했다. 이것은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과소비의 결과가 아니라, 국가가 설계한 소비 진작 정책이 만들어낸 구조였다.

결과는 수치로 나타났다. 1998년 63조 원대였던 카드 이용액은 4년 만에 622조 원으로 약 10배 뛰었다. 2003년에는 경제활동인구 1인당 평균 5장의 카드를 보유했고, 연체율은 14%를 넘어섰다. 372만 명의 신용불량자 중 60%가 카드 연체자였다. 국제결제은행(BIS)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를 ‘플라스틱 버블’로 규정하며 과당 경쟁과 느슨한 신용 평가, 미흡한 정보 공유를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했다.

여기서 핵심은 이것이다. 신용이 팽창할 때는 모두가 정상적인 금융 거래자였다. 그러나 거품이 꺼지는 순간, 그 비용은 카드사나 정부가 아닌 개인이 짊어졌다. 수백만 명이 하룻밤 사이에 금융 제도 밖으로 밀려났다. 이 구조를 보지 않으면 불법사금융의 뿌리를 개인의 도덕 문제로 오해하게 된다.

‘신용불량’ 딱지가 사람의 선택지를 어떻게 지워버리는가

카드 한도를 초과하고 연체가 시작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단순하다. 카드사는 한도를 차단하고, 은행은 신용불량자로 등록한다. 이 순간부터 당사자는 제도권 금융에서 사실상 퇴출된다. 대출도, 할부도, 경우에 따라서는 통장 개설조차 어려워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생계 자체를 멈출 수 없다는 점이다. 교육비와 의료비는 계속 발생하고, 기존 빚의 이자도 납부해야 한다.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지만 돈이 필요한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불법사금융이다. 신용 조회 없이, 빠르게, 지금 당장 돈을 빌려준다.

금융감독원의 당시 사금융 이용자 설문에서도 이 이중성이 드러난다. 실직이나 병원비 같은 생계형 이유와 카드 연체 정리, 기존 사금융 상환 같은 ‘빚을 막기 위한 빚’ 구조가 동시에 기록돼 있다. 사금융 이용자를 단순히 도덕적 문제가 있는 집단으로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제도가 만들어낸 선택지의 소멸이 이 시장을 키운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불법사금융 피해는 먼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제도권 신용이 무너지는 경험, 그 뒤에 남는 선택지 없는 상황은 지금도 누군가의 현실이다.

대부업법 제정은 해결책이었나, 차선책이었나

카드대란 이후 정부가 내놓은 주요 대응 중 하나가 2002년 10월 시행된 대부업법이다. 핵심은 등록 없이 영업하는 사채 시장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고, 최소한의 이자 상한과 감독 체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법정 최고이자율은 연 66%였다. 지금 기준으로는 충격적인 수치지만, 그 배경에는 수백 퍼센트대 무등록 사채를 방치하는 것보다 우선 시장을 드러내고 규율하겠다는 현실적 판단이 깔려 있었다.

이 법에는 두 가지 평가가 공존한다. 고금리를 사실상 합법화했다는 비판과, 음지의 시장을 처음으로 감독망 안에 넣은 출발점이라는 평가다. 어느 쪽도 완전히 틀리지 않는다. 대부업법은 불법사금융을 뿌리 뽑기 위한 설계가 아니었다. 제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식 통로를 만들고, 그 안에서의 피해를 줄이겠다는 타협의 산물이었다.

주목할 점은 이 법의 존재 자체가 당시 상황의 성격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이 대부업이라는 시장 자체를 인정하는 법을 만들어야 했다는 사실은, 카드대란 이후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인구의 규모가 그만큼 컸음을 뜻한다. 개인의 의지로 막을 수 없는 수준의 금융 탈락이 이미 광범위하게 벌어져 있었다.

지금의 금융 구조는 같은 패턴 위에 서 있는가

카드대란 이후 20여 년이 지났다. 길거리 카드 모집은 금지됐고, 법정 최고금리는 20%로 낮아졌으며, 햇살론 같은 정책금융 상품도 만들어졌다. 외형상 구조는 분명 개선됐다.

그런데 불법사금융 시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텔레그램과 익명 메신저로 이동하며 더 찾기 어려운 형태가 됐다. 이것은 단속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권 금융이 특정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여전히 문턱에서 돌려보내고 있고, 그 공백을 불법사금융이 채운다는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은 것이다.

지금 정부는 범정부 태스크포스를 꾸려 계좌 차단, 피해구제, 채무자 대리인 지원, 예방 대출 확대를 동시에 밀어붙이고 있다. 이 대응이 과거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을지의 판단 기준은 하나다. 피해자 구제와 업자 단속에 그치는지, 아니면 이 시장으로 밀려나는 사람이 반복해서 만들어지는 구조적 원인까지 건드리는지다.

카드대란이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수백만 명의 신용불량자 숫자가 아니다. 제도권 신용이 팽창할 때 모두를 끌어안았다가, 위기가 오면 가장 취약한 쪽부터 밀어내는 방식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였다.

불법사금융은 그 밀려난 자리에서 자란다. 이 시장을 줄이려면 단속의 강도보다 먼저 따져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도권 금융이 어떤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그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지가 진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