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병을 돌봐준 자녀에게 재산을 더 남기고 싶었지만, 연락을 끊은 다른 자녀가 유류분을 주장하며 부동산을 가져간 사례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2026년 2월 12일 국회를 통과한 민법 개정안은 바로 이런 장면을 바꾸기 위해 만들어졌다. 단순히 법 조항 몇 개가 바뀐 것이 아니라, 상속의 ‘도덕적 기준’과 ‘공정성 판단 방식’ 자체가 재설계된 것이다.
이번 개정은 자산을 보유한 중장년층, 은퇴를 앞둔 세대, 그리고 상속 분쟁을 겪고 있거나 예방하려는 모든 당사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변경된 규정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고, 실제로 어떤 상황에 적용되는지 파악하는 것이 지금 당장 필요한 이유다.
패륜 상속인 배제 — 이제는 자녀도 상속에서 퇴출될 수 있다
기존 민법은 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학대하는 경우처럼 직계존속의 비위에 한해서만 상속권 상실 선고를 허용했다. 피상속인을 오랫동안 방치하거나 폭행한 자녀, 정서적으로 심각한 위해를 가한 배우자도 법적으로는 상속인 자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공백이 수많은 분쟁의 근원이었다.
개정 민법(제1004조의2)은 직계비속, 배우자를 포함한 모든 상속인으로 상속권 상실 선고 대상을 확대했다.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거나, 중대한 범죄행위,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라면 가정법원에 상속권 상실 청구가 가능해진다.
실질적으로 중요한 지점은 ‘중대한’이라는 기준이다. 단순히 왕래가 없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상속권 상실 선고를 받기 어렵다. 부양의무 위반의 구체성, 범죄행위의 내용, 대우의 심각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향후 법원이 어떤 사례를 ‘중대한’으로 판단할지 판례가 쌓이기 전까지, 이 조항의 실효성은 준비 수준에 달려 있다.
배우자 대습상속 차단 — 간접 수혜의 통로가 막혔다
이전에는 패륜 행위로 상속권을 잃은 사람이 있더라도, 그 배우자가 대습상속인으로 나서 재산을 가져갈 수 있었다. 사실상 상속권을 잃은 당사자가 배우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익을 얻는 구조였다. 법의 의도와 정반대되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개정 민법(제1000조, 제1003조)은 이 허점을 명시적으로 차단했다. 상속권을 잃은 사람의 배우자는 대습상속인에서 제외된다. 대습상속은 오직 사망한 사람의 배우자에게만 허용된다.
이 변화는 상속 설계에서 ‘배우자 경로’를 통한 우회 수령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가족 내 갈등이 있는 경우, 상속인의 배우자에게까지 재산이 흘러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근거가 생긴 것이다.
간병하고 헌신한 상속인 — 이제 그 기여가 법적으로 보호받는다
오랫동안 부모를 간병하거나 가업 유지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자녀가 그 대가로 증여를 받았다면, 기존 법에서는 이 증여가 특별수익으로 간주되어 유류분 반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기여한 사람이 오히려 다른 상속인에게 돈을 돌려주는 역설적인 상황이 반복됐다.
개정 민법(제1008조 단서)은 피상속인이 기여 대가로 명시적으로 제공한 보상적 증여는 특별수익에서 제외되도록 했다. 이는 유류분 산정 기준에서도 빠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이 조항의 실효성은 증여의 ‘보상적 성격’을 어떻게 입증하느냐에 달려 있다. 단순히 오래 같이 살았다거나 간병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증여 시점, 증여 이유, 피상속인의 의사 표시가 문서화되어 있을수록 이 조항의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전에 공증을 포함한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현실적인 준비 방법이다.

유류분 반환, 부동산 대신 현금으로 — 분쟁 구조가 바뀐다
유류분 반환의 원칙이 현물(원물)에서 가액(현금)으로 일원화됐다(민법 제1115조). 기존에는 증여받은 부동산이나 주식을 그대로 반환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 과정에서 공유 상태가 발생하거나 추가 소송으로 이어지는 일이 잦았다.
가액 반환으로 전환되면 분쟁의 물리적 복잡성은 줄어들지만, 가액 산정 시점을 둘러싼 새로운 다툼이 생길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른 경우, 증여 시점 기준으로 볼 것인지 상속 개시 시점 기준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금액 차이가 수억 원에 달할 수 있다.
이번 변경은 부동산 자산이 많은 가정에 특히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 중심의 상속 포트폴리오를 가진 경우라면, 유류분 반환 가능성을 고려해 자산 구성과 증여 계획을 미리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급 적용 여부 — 이미 시작된 상속도 영향을 받는다
이번 개정에서 놓치기 쉬운 부분은 적용 시점이다. 유류분 가액반환 규정은 개정 민법 시행 이후 발생한 상속부터 적용되지만, 나머지 세 가지 규정(상속권 상실 확대, 배우자 대습상속 제한, 기여상속인 보호)은 2024년 4월 25일 이후 상속이 개시된 경우부터 소급 적용된다.
즉, 법이 통과되기 이전에 이미 상속이 시작된 사안이라도 2024년 4월 25일 이후라면 새로운 규정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상속 분쟁 중이거나 상속 절차가 진행 중인 경우라면 기존 논리가 그대로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이번 민법 개정은 ‘누가 상속받을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법이 보다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는 선언이다. 가족 내 기여와 의무를 외면한 채 법적 지위만으로 재산을 가져가던 구조에 균열이 생겼다. 다만 그 균열을 실제 보호로 연결하려면, 피상속인의 의사와 상속인 간의 관계를 지금부터 기록하고 설계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