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커졌지만 실속은 없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500조원에 육박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겉으로 보기엔 든든해 보이지만, 정작 가입자들의 체감은 다르다. 평균 수익률은 여전히 시중 금리를 간신히 웃도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금융사들은 그동안 퇴직연금을 ‘판매’의 대상으로만 바라봤다. 가입자를 늘리고 수수료를 챙기는 데에만 집중했을 뿐, 실제 자산을 어떻게 불릴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
전문가에게 맡긴다는데, 과연?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정부는 전문가가 직접 운용하는 구조로 무게중심을 옮기려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의문은 남는다. 과연 ‘전문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수익률이 보장되는가? 금융업계에서는 이미 펀드매니저들의 성과가 천차만별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더구나 퇴직연금은 장기투자가 기본인데, 단기 성과에 민감한 국내 금융시장 구조에서 과연 장기 관점의 운용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
가입자는 여전히 ‘을’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정보 비대칭이다. 퇴직연금 가입자 대부분은 본인의 연금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되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금융사에서 제공하는 안내문은 전문용어 투성이고,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은 제한적이다. ‘전문가 운용’이라는 명목 아래 가입자의 선택권은 더욱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결국 내 노후자금인데도 남이 알아서 굴리는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진짜 필요한 건 투명성과 교육
퇴직연금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단순히 운용 주체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입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금융 문해력을 높이는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500조라는 숫자가 무색하지 않으려면, 그 돈의 주인인 개인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개혁이 또 다른 ‘금융사 배불리기’로 끝나지 않도록, 가입자 중심의 시스템 재설계가 절실하다.


